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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문맹

스마트폰 금융, 주민센터에서 배운다? 디지털 금융문맹을 위한 생생 체험기

‘우리 동네에도 이런 게 있었어?’

서울 강북구의 한 작은 주민센터를 찾은 건 평일 오후였다. 입구에서부터 ‘디지털 금융 교육 수강생 모집’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디지털 금융문맹’ 상태에 머무른 중·장년층을 위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설명도 함께였다. 하루 2시간씩, 주 3회 진행되며, 신청만 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직접 프로그램을 체험해보기 위해 ‘참관 수강생’으로 등록했다.

 

주민센터에서 디지털 금융문맹 극복을 위한 체험기

 

 

강의실 속 풍경: “은행 앱, 무서워서 안 열어봤어요”

프로그램 첫날, 15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각자의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교탁 앞에 모여 있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이었고, 몇몇은 고령의 부모님을 대신해 온 자녀들도 보였다. 강사는 스마트폰의 보안 설정부터 시작해 인터넷 뱅킹 로그인 방법, 이체할 때 주의해야 할 보이스피싱 사기 사례 등을 소개했다. 특히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온 링크를 누르지 말 것’이라는 부분에서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행 앱에 들어가면 혹시라도 돈이 빠져나갈까 봐 무서워서 안 열어봤어요.” 한 수강생의 말에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디지털 금융문맹은 단순히 기술 부족이 아닌, 두려움과 불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손으로 직접 따라 해보는 앱 실습

이날 교육의 하이라이트는 실습 시간이었다. 주민센터에서 미리 준비한 교재에는 간단한 그림 설명과 절차가 적혀 있었고, 강사가 직접 시연하면서 수강생들이 따라 하도록 도와줬다.
‘토스 앱 설치 → 본인 인증 → 내 보험 내역 확인 → 숨은 금융자산 조회’까지 따라가는 과정을 한 단계씩 실습했다. 수강생들은 연신 “오, 이런 것도 되네?”, “이거 우리 딸이 해준 건데 뭔지 몰랐어.”라며 놀라워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장기 미청구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자신이 금융의 주체라는 감각을 되찾는 경험이었다.

 

디지털 금융문맹,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강사는 수업 도중 이런 말을 했다.

“금융 지식은 누구나 어려워요. 젊은 사람도 사기당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게 잘못이 아니라, 지금 배우려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해요.”
이 말에 몇몇 어르신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실제로 디지털 금융문맹 상태에 놓인 이들은 종종 “내가 너무 무식해서…”,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나…”라는 자책에 빠져 있기 쉽다. 하지만 주민센터 교육을 통해 ‘나는 할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을 얻는 순간, 마음가짐이 바뀌기 시작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새삼 다가왔다.

 

교육 후 변화: 금융 앱을 ‘직접’ 열어보게 되다

 

교육이 끝난 뒤 수강생들에게 달라진 점을 물어봤다.
“이젠 매달 오는 연금이 정확히 언제 들어오는지 직접 확인해요.”
“우리 딸이 깔아줬던 토스 앱을 혼자 열어보고, 문자로 온 보이스피싱도 구별할 수 있게 됐어요.”
“은행 가는 게 귀찮았는데, 모바일로 납부 확인까지 되니 신세계예요.”
작지만 확실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내가 내 돈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디지털 금융문맹 탈출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교육의 지속성과 피드백, 개선이 필요한 지점도 있다

실제 교육에 참여한 수강생 중 일부는 “좋은 교육이지만 한 번 듣고 나면 까먹게 된다”, “집에 가서 혼자 다시 해보려면 또 막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는 단발성 교육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특히 디지털 금융문맹은 기술적 습득뿐 아니라, 반복적인 실습과 상황별 대응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일부 주민센터에서는 교재를 활용해 자율 학습 시간을 제공하거나, 주 1회 온라인 재점검 세션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전면 확대는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정책적인 뒷받침과 지역사회 자원봉사자의 연계 활동이 필요하다는 과제가 남는다.

 

자녀 세대의 동반 학습, 더 효과적인 ‘세대 협업’ 모델

탐방 중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40대 중반 자녀가 70대 아버지와 함께 수업을 듣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자식이랑 같이 배워서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고, 자녀는 “평소에도 스마트폰 설정을 도와주는데, 교육 내용을 같이 들으니 집에서도 설명하기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대 간 동반 참여형 교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가족 간 대화의 물꼬를 트고 금융 습관을 공유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디지털 금융문맹을 가정 단위에서 풀어가는 접근은, 개인 중심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가족 참여형 스마트 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확산력 있는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 디지털 금융문맹 해소 프로그램, 더 많아져야

이 프로그램은 서울시가 구청과 협력해 운영하는 '디지털 포용 교육'의 일환이다. 전국 대부분의 광역시·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시범 프로그램이나 정보화 교육을 운영 중이지만, 아직 디지털 금융문맹 세대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은 부족한 실정이다.
교육의 지속성도 문제다. 단발성 교육이 아니라 반복적인 연습과 습관화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매주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런 교육이 더 많은 지역, 더 다양한 계층에게 확산된다면 고령자 금융 피해는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정보화 교육을 운영 중이지만, 교육 내용이 금융에 집중되지 않거나, 단순한 스마트폰 기초 기능 위주인 경우가 많다. 특히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의 고령층은 정보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디지털 금융문맹 해소를 위한 전문 교육은 더욱 절실하다.
전국 주민센터나 복지관에 ‘찾아가는 금융 교육 키트’를 마련하거나, 공공기관과 은행이 협업해 소규모 순회 교육을 운영하는 모델도 가능하다. 나아가 교육 수료자에게는 모바일 금융 자가 점검표나 ‘스미싱 문자 구별 퀴즈’, ‘1개월 앱 사용 미션’과 같은 후속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지금은 작은 시도일지 모르지만, 이처럼 지역별,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이 확산되면 우리 사회의 디지털 금융문맹률은 획기적으로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금융문맹 탈출, 공동체의 과제가 되다

탐방을 마치며, 이 교육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사기 피해가 고령층에 집중되는 지금, 이들을 위한 교육과 지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자녀 세대가 부모님의 스마트폰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지자체가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언론과 블로그가 정보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디지털 금융문맹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사회적 안전망의 일부다.

 

"배움에는 늦은 때가 없다"

 

주민센터 교육을 통해 내가 본 것은 단순한 스마트폰 실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감을 되찾는 과정이자, 디지털 금융문맹이라는 낙인을 걷어내는 작은 사회적 혁명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어르신이 "이건 어떻게 보는 거야?"라고 묻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건 어렵지 않아요, 같이 해봐요”라고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금융 생활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